― 산업의 심장에서 도시재생의 상징으로 변해가는 공간, 오늘은 세운상가 전자 왕국에서 재생 공간으로 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해 보겠습니다.

1. 1970~80년대, 대한민국 전자 산업의 심장
서울 종로와 을지로 사이를 가로지르는 거대한 건축물, 세운상가는 1960년대 후반 조성된 국내 최초의 주상복합 단지 중 하나입니다. 당시로서는 혁신적인 구조였습니다. 상업 시설과 주거 공간을 한 건물 안에 배치한 대규모 복합 건물이었고, ‘공중 보행로’라는 개념까지 도입된 미래형 도시 실험이었습니다.
1970~80년대에 들어서면서 세운상가는 자연스럽게 전자 산업의 중심지로 자리 잡았습니다. 라디오, 카세트테이프, 오디오 부품, TV 수리점, 전자회로 부품 상점까지 각종 전자 관련 상점이 빼곡히 들어섰습니다. 특히 전자 부품을 구하기 어려웠던 시절, 세운상가는 기술자와 학생, 공학도들에게는 필수 방문지였습니다.
당시 세운상가는 단순한 상가가 아니었습니다. 부품을 사고파는 공간이자 기술이 교류되는 장소였습니다. 필요한 회로를 설명하면 부품을 맞춰주었고, 수리 기술을 공유하는 장인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이곳에서 전자 제품을 직접 조립하거나 개조하는 문화가 자연스럽게 형성되었습니다. 한국 전자 산업의 초창기 기술 생태계가 이 공간에서 자라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또한 음향 장비와 음반 유통으로도 유명했습니다. 음악 애호가들은 세운상가에서 희귀 음반을 구했고, 오디오 마니아들은 직접 조립한 앰프로 소리를 튜닝했습니다. 세운상가는 기술과 취향이 동시에 교차하던 공간이었습니다.
2. 쇠퇴와 철거 논란, 사라질 뻔한 공간
1990년대 이후 도시 구조가 변화하면서 세운상가의 위상은 점차 약화되었습니다. 대형 전자 브랜드 매장이 등장하고, 전자 유통의 중심이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에 온라인 쇼핑이 확대되면서 부품 시장 역시 점차 위축되었습니다.
건물의 노후화도 문제였습니다. 외관은 낡았고, 내부 구조는 현대 소비 패턴에 맞지 않았습니다. 방문객은 줄어들었고, 일부 구간은 공실로 남았습니다. 한때 기술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던 공간은 점점 침체된 상권으로 인식되었습니다.
이 시기 세운상가는 철거 대상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도심 재개발 계획 속에서 낡은 대형 건축물은 효율성이 낮은 공간으로 평가받았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세운상가는 한국 산업화와 근대 도시 건축의 상징이라는 평가도 받았습니다. 철거와 보존 사이에서 논쟁이 이어졌습니다.
만약 완전히 철거되었다면, 세운상가는 기억 속 공간으로만 남았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도시의 역사성과 산업 유산을 보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으면서 방향이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단순 철거가 아니라 ‘재생’이라는 선택지가 논의되었습니다.
3. 도시재생의 실험,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공간
2010년대 들어 세운상가는 대규모 리모델링과 도시재생 프로젝트를 통해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했습니다. 낡은 외관은 정비되었고, 공중 보행로는 시민들이 산책할 수 있는 공간으로 재구성되었습니다. 일부 구역에는 창작 스튜디오, 전시 공간, 스타트업 사무실, 카페 등이 들어섰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과거의 전자 부품 상점 일부가 여전히 남아 있다는 점입니다. 최신 장비를 갖춘 창작 공간과 수십 년 경력의 기술자가 운영하는 부품 상점이 한 건물 안에 공존하고 있습니다. 과거와 현재가 한 공간에서 교차하는 독특한 풍경입니다.
세운상가는 이제 ‘전자 왕국’이라기보다는 ‘도시재생의 상징’으로 더 자주 언급됩니다. 산업 중심 공간에서 문화·창작 중심 공간으로 기능이 이동한 사례입니다. 물론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닙니다. 방문객 유입, 상권 활성화, 임대료 문제 등 여전히 과제가 남아 있습니다.
그럼에도 세운상가는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이는 단순한 건물 보존이 아니라, 산업화 시대의 기억을 현재와 연결하려는 시도입니다. 도시가 변화할 때 모든 것을 허물고 새로 짓는 것이 능사는 아니라는 점을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합니다.
세운상가의 변화는 우리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도시는 얼마나 빠르게 바뀌어야 하는가, 그리고 무엇을 남겨야 하는가. 과거의 기술자들이 오가던 복도 위를 오늘날 시민들이 산책하며 전시를 관람하는 장면은 도시의 시간이 겹쳐지는 순간을 상징합니다.
당신은 세운상가를 과거의 산업 유산으로 기억하십니까, 아니면 현재의 문화 공간으로 경험하고 계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