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 박람회 이후, 남겨진 공간의 시간. 오늘은 대전 엑스포 과학공원, 엑스포 이후의 공간에 대해 이야기를 해 보겠습니다.

1. 1993년, 세계가 모였던 과학의 도시
1993년, 대전은 대한민국 과학기술의 상징적인 무대가 되었습니다. ‘새로운 도약의 길’을 주제로 열린 대전 엑스포는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규모의 국제 행사였습니다. 세계 여러 나라가 참가했고, 미래 기술과 우주, 환경, 통신에 대한 비전이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대전은 그 순간만큼은 단순한 지방 도시가 아니라, 세계가 주목하는 미래 도시였습니다.
엑스포가 열렸던 공간은 이후 ‘엑스포 과학공원’으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행사 기간 동안 화려한 전시관과 상징 구조물들이 세워졌고, 그중에서도 한빛탑은 대전의 새로운 랜드마크가 되었습니다. 아이들은 미래형 로봇과 첨단 영상관을 보며 꿈을 키웠고, 어른들은 과학기술이 바꿀 세상을 상상했습니다.
엑스포는 단순한 축제가 아니라 국가적 프로젝트였습니다. 당시 대한민국은 고도성장을 지나 선진국 문턱에 서 있던 시기였고, 과학기술은 국가 경쟁력의 핵심이었습니다. 대전 엑스포는 그 자신감의 표현이었습니다. ‘과학도시 대전’이라는 이미지도 이 시기를 기점으로 본격화되었습니다.
그러나 모든 박람회가 그렇듯 축제는 끝이 있습니다. 수많은 관람객이 다녀간 자리에는 거대한 시설과 공간이 남았습니다. 문제는 그 이후였습니다. 화려했던 무대가 일상으로 돌아왔을 때, 이 공간은 어떤 역할을 맡아야 했을까요.
2. 축제 이후의 공원, 애매한 시간의 시작
엑스포가 끝난 뒤 이곳은 ‘엑스포 과학공원’이라는 이름으로 재정비되었습니다. 일부 전시관은 과학 체험관이나 전시 시설로 활용되었고, 넓은 부지는 시민들의 휴식 공간으로 개방되었습니다. 한빛탑은 여전히 자리를 지켰고, 공원은 대전 시민들의 산책 코스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초기의 열기와 상징성은 점차 희미해졌습니다. 박람회용으로 설계된 건물들은 장기적인 운영을 전제로 한 구조가 아니었고, 유지·보수 비용은 부담이 되었습니다. 일부 시설은 폐쇄되거나 철거되었고, 공간의 정체성은 모호해졌습니다. 과학 전시 공간인지, 놀이공원인지, 단순한 공원인지 분명하지 않은 상태가 이어졌습니다.
이 시기 엑스포 과학공원은 ‘애매한 공간’이 되었습니다. 과거의 영광을 완전히 지우지도, 그렇다고 적극적으로 재탄생하지도 못한 채 중간 지점에 머물렀습니다. 주말이면 가족 단위 방문객이 찾았지만, 전국적인 명소라기보다는 지역 공원에 가까웠습니다.
이는 대형 국제 행사가 끝난 뒤 많은 도시가 겪는 공통적인 문제이기도 합니다. 막대한 예산과 기대 속에 조성된 공간이 행사 이후 어떤 방향으로 지속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충분하지 않으면, 상징은 빠르게 일상으로 흡수됩니다. 대전 엑스포 과학공원 역시 그러한 과정을 거쳤습니다.
그럼에도 이 공간은 완전히 버려지지 않았습니다. 한빛탑은 여전히 대전의 상징으로 남았고, 공원은 시민들의 기억 속에 ‘엑스포’라는 이름과 함께 자리 잡았습니다. 다만 그것은 미래를 향한 상징이라기보다는 한 시대를 추억하는 장소에 가까워졌습니다.
3. 재개발과 재해석, 과학공원의 또 다른 미래
시간이 흐르면서 엑스포 과학공원 일대는 다시 한 번 변화의 중심에 서게 되었습니다. 노후 시설 정비와 도시 경쟁력 강화를 목표로 재개발 논의가 본격화되었고, 일부 부지는 새로운 상업·문화 공간으로 전환되었습니다. 첨단 과학과 산업을 상징하던 공간이 복합 문화·상업 지구로 재편되는 과정이 시작된 것입니다.
이 변화는 상징적입니다. 과거에는 ‘전시’ 중심의 미래를 보여주었다면, 이제는 ‘생활’ 속의 미래를 담으려는 시도입니다. 과학을 보여주는 공간에서, 과학 기술 기업과 콘텐츠 산업이 실제로 활동하는 공간으로의 전환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이는 도시의 성장 전략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질문도 남습니다. 과연 엑스포의 기억은 어디까지 보존되어야 할까요. 모든 것을 새롭게 바꾸는 것이 능사일까요, 아니면 일부 상징을 남겨 도시의 역사성을 이어가는 것이 더 의미 있을까요.
한빛탑은 여전히 서 있습니다. 밤이 되면 조명이 켜지고, 그 아래를 산책하는 시민들의 모습은 과거와 현재가 겹쳐 보이는 장면을 만들어냅니다. 이 장면은 말해줍니다. 공간은 단순한 토지가 아니라 시간이 축적된 장소라는 사실입니다.
대전 엑스포 과학공원은 완전히 사라진 공간이 아닙니다. 그러나 처음과는 분명히 다른 의미를 지니게 되었습니다. 세계 박람회의 화려한 무대에서, 시민의 일상 공간으로, 그리고 다시 재개발의 흐름 속으로 이동해온 이 장소는 도시가 어떻게 기억을 관리하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어쩌면 이 공간의 진짜 가치는 ‘과학’ 그 자체보다도 한 시대가 품었던 미래에 대한 기대를 간직하고 있다는 점일지도 모릅니다. 1993년의 대전은 미래를 전시했습니다. 그리고 지금의 대전은 그 미래를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당신은 엑스포 과학공원을 어떤 모습으로 기억하고 있습니까? 화려했던 박람회의 현장입니까, 아니면 조용한 산책로입니까.